영화

날씨의 아이 리뷰 - 날씨의 아이가 너의 이름보다 발전한 이유

아앙망드 2021. 12. 23. 06:36

 

출처 넷플릭스

'너의 이름은'으로 화려하게 이름을 떨친 신카이 마코토의 다음 작품이 바로 날씨의 아이였습니다.

때문에 많은 주목을 받은 만큼 그 기대도 컸던 탓인지 '스토리가 별로다.' '개연성이 떨어진다.' 등등 날씨에 아이는 너의 이름은과 다르게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필자는 어쩌다 볼 타이밍을 놓쳐버려 최근에 들어서야, 그러니깐 그런 평들을 접하고 나서 보았는데 감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오히려 날씨의 아이를 통해 신카이 마코토는 단순히 '러브 스토리'만을 그려대는 애니 감독이 아니고 아주 세련되게 사회문제를 다뤄내는 작가로 거듭했다는 점에 더 큰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가끔 영화보다 어떤 사회적인 메시지나 이데올로기가 우선인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작품은 '이야기'를 하지 않고 보는 이에게 '교육'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럼 더 이상 그건 '작품'이라고 말하기 보다 '연설'이라고 말해도 좋고 더 이상 예술 작품으로써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럼 내가 날씨의 아이가 좋은 작품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운석이 떨어져 우연히 바꿔버린 두 남녀와 다르게 날씨의 아이에선 그 판타지로 생겨나는 스토리가 능동적입니다.

너의 이름은이 일어나 버린 재해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아름다운 작품이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현실적'이진 않았습니다.

날씨의 아이는 그런 너의 이름은에 단점을 생각해가며 만들었다는 것이 눈에 띄게 보이는 작품이었습니다.

 

비는 왜 내릴까?

 

작중에 유독 호다카는 비를 맞습니다.

계속 계속해서, 어두운 도시를 떠돌면서 변변찮은 아르바이트도 구하지 못한 체 다니는 호다카의 모습은 처절합니다.

그럼에도 집에 돌아가지 않고 도쿄에 머무르려는 호다카의 모습은 매일매일 잔뜩 비만 내리는 도쿄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그러던 와중 우연히 총을 얻게 됩니다.

여러 평들에는 여기서 이 총이 개연성이 매우 떨어진다는 말들이 많은데 저 또한 처음 예고편만을 봤을 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작품을 보고 한 후 조금만 생각해 보니 그 점이 매우 재미있는 부분이 있고 바로 이 지점에서 날씨의 아이의 스토리가 말하고 있는 점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총이라는 물건의 등장으로.

이미 이 세상은 어떤 총기 밀수업자가 숨겨놓은 총을 우연히 발견해 내는 것은 개연성이 매우 떨어지는 세상이 되었는데도 뻔뻔히 미성년자를 유흥업소로 데려가는 행위는 이미 너무 당연하게 일어나는 사회 문제 중 하나 정도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총을 쉽게 소지할 수 없다는 일이 당연시 여겨지는 것처럼 미성년자를 노린 나쁜 술법 역시 사회문제로써 너무 당연시 여겨지게 된 나머지 더 이상 관심이 줄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작품에서 호다카를 강제로 데려가려던 남자가 형사에게 '미성년인지 몰랐다고' 하는 변명에는 형사는 관심이 보이지 않고 '괜히 뛰게 만들었다.' 하고 불평을 하는 대사를 통해 이 작품이 말하고 싶은 문제를 여실히 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히나가 동생과 둘이 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고 아동보호 센터에서 도와준다는 경찰의 말조차 불신한다

호다카 또한 경찰이나 형사에게 도움을 구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그저 도망만 다닙니다.

이렇게 사회를 불신하게 된 것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다는 것을 작품을 일부로 이야기를 숨기면서 오히려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말하고 싶은 점은, 우리 사회에 지금 필요한 것은.

히나가 호다카에게 준 버거 한 개, 호다카가 길가에 있는 히나가 곤란한 상황에 가진 관심, 마지막에 내쳐버리긴 했지만 처음 호다카를 거둬준 스가.

이것들이 말하고 있는 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시작은 작은 관심과 배려부터 시작하면 된다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손에 총을 쥐여주지 않아도 용기를 가질 수 있고, 날씨를 맑게 해야 할 정도의 힘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맑은 하늘을 위해 한 사람이 희생해야 된다는 말은 곧, 겉보기에 멀쩡한 도시로 보이기 위해 이런 아이들 묵인해 버리는 사회와도 같다는 것.

그리고 그런 '냉혹한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건 '한 명의 개인'으로써 '맑음 소녀가 아니라도 네가 좋다, 푸른 하늘이 아니어도, 날씨가 미쳐있어도 된다'라고 외치는 호다카가 아닐까 싶습니다.

 

오래간만에 신카이 마코토 영화를 봤는데 너무 좋아서 글을 잔뜩 써버렸네요.

진짜 좋은 영화이니 꼭!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