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소설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나서 느낀 점 (후기와 해석)

아앙망드 2021. 6. 17. 02:31

 

 

내가 노르웨이의 숲을 처음 읽었던 것은 고2 무렵이었다.

만화방에서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던 중 노르웨이의 숲의 옛날 제목인 상실의 시대를 발견해 보게 되었다.

내가 그때 느꼈던 노르웨이의 숲에 대한 느낌은 안타까움이었다.

 

책을 읽고 있는 내내 어딘지 마음이 허~한 느낌이 들다가 밤새 책을 완독 한 후엔 완전히 몰입해서 책을 덮고 밖에 나오니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은 집에 올 때까지 가시시 않았다.

그건 평소 내가 가끔씩 느꼈던 한 번씩 몰아붙이는 고독함과는 다른 느낌, 그저 어딘가 한편에서 느껴지는 잔잔한 고독함이었다.

 

책에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인 와타나베, 키즈키, 나오코는 친한 친구였다. 어딜 가나 같이 다니는 그런

키즈키와 나오코는 소꿉친구이자 연인관계였는데 고등학교 때 키즈키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와타나베와 나오코는 사실 키즈키 때문에 어울리는 거지 친한 건 아니라서 둘은 그 이후로 사이가 서먹해진다.

와타나베가 대학생활 도중 나오코를 우연히 만나고 둘은 그 이후로 친해서 어느 날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 이후로 나오코는 소식이 끊기고 둘은 편지로 대화를 주고받게 된다.

그러는 사이 와타나베에게는 미도리라는 여자와 인연이 생긴다.

와타나베는 미도리와 나오코 둘과의 관계에서 갈팡질팡하며 방황하게 된다.

그러던 중 나오코는 자살하게 되고 와타나베는 정처 없이 떠돌다가 미도리에게 연락을 한다-

라는 내용으로 소설을 마치게 된다.

 

나는 제목이 수정되어 나온 노르웨이의 숲을 다시 읽게 되었다.

다시 읽어본 소감은 이것은 죽음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라고 느끼게 되었다.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은 꽤나 내용과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키즈키의 죽음으로써 사람과의 거리를 두게 된 와타나베 , 그에게 나오코는 상실의 고통을 알고 있는 버팀목이다.

누나와 키즈키의 죽음으로 의지할 사람이 없게 돼버린 나오코,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더 이상 의존하지 못하고 거부감을 느낀다. 결국 이 거부감은 그녀의 죄책감과 죽음으로 이어진다.

두 인물 모두 죽음을 경험한 이후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킨다.

 

대학 선배인 와타나베는 제멋대로이다. 그는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이다. 머리도 좋고 집안도 좋은 와타나베는 상실을 모른다. 때문에 그의 자존심은 자신이 다른 사람 없이도 홀로 우뚝 설 수 있다는 자만심을 가지게 한다. 결국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잃고 나서야 후회를 한다.

 

이렇게 죽음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들 중 홀로 빛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와타나베가 대학에서 만나게 된 미도리라는 인물이다.

그녀는 부모님을 병으로 모두 잃게 됐다. 즉 죽음에 의한 상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어둡고 끈적한 늪에 빠지지 않는다.

미도리는 항상 주체적이며 스스로를 고립 지시 키 않는다.

자신만에 방법으로 고통을 극복하면서 현실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마지막 페이지에 와타나베는 나오코가 죽은 이후 한 달간 방황을 하다가 미도리에게 전화를 한다.

미도리는 와타나베에게 묻는다.

'지금 어디에 있냐'라고

그것은 우리들에게 하는 질문과도 같다.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아직도 상실감에 빠져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에서 헤매고 있는가?

아니면 고통을 마주하고 현실을 살고 있는가?